며칠 전에 나쁜 상사와의 큰 일을 치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대기업도 아니고 탄탄하긴 하지만 여직원 비율이 현저히 낮은 내 직장에서 내가 유산 위기로 3개월의 병가를 냈을 때
회사에 끼친 손해가 얼마일까. 중간에 업무 프로세스가 꼬여 일에 지장을 겪은 동료들의 시간, 대신 일할 사람을 뽑는 동안의 공백, 나 대신 들어온 사람의 OJT 비용. 등등을 생각했을 때 내가 생각해도 오너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일 일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특수한 업무가 아니기에 대신 할 사람을 찾는 것은 쉽다. 다만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 생길 뿐.
그렇지만 괜찮아졌다고 사무실을 좀 나오다가 다시 출산휴가로 3개월 자리를 비워야 할 때 또 다시 회사엔 그 손해가 반복 되는 것이다. 내가 그 부담감을 떨치고 아이를 가진 워킹맘으로 이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자꾸만 들었다.
둘째론. 나와 모자장수는 서울이 고향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자장수의 본가도, 나의 고향도. 가까운 곳이 아니다.
고로 육아를 도와 줄 분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우리 부부의 몫. 주위엔 쉽게들 얘기하는 분도 있다. 출산 휴가 끝나면 아가는 어른들에게 맡기도 회사 복귀 하면 된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닌 말이다. 어떻게 아가를 떼어 놓고 한달을 지낼 수 있겠는가. ㅜㅜ 그렇다고 우리 보리를 아직 엄마 얼굴도 못 알아보는 갓난쟁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는건 어불성설.
마지막으로, 역시 돈이다. 물론 내가 모자장수와 맞벌이를 한다면 우린 부족하지 않게 보리를 잘 키우며 알콩달콩 잘 지낼 수 있다. 문화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맛난 것도 먹으러 다니고. 그치만 모자장수가 심각하게 얘기한다. 전에는 넌지시 꺼냈던 말이지만. 이젠 단호하다할 정도로 결심이 굳게 선 어조로 "난 너가 일을 그만 뒀으면 좋겠어" 물론 내 커리어를 중단시키고 싶어 하는 말은 절대 아님. 모자장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절대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만 뒀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보리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 출퇴근, 유산위기에 이어 올 지 모르는 조산의 위기, 못된 상사 밑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점점 날 지치게 할 게 뻔하기 때문. 그 말에 반박할 말은 없었다.
전세계약이 만료 되어 이사도 해야하고, 전세자금대출도 있고, 이제 가족도 한명 는다. 모자 장수 혼자 벌어서 서울바닥에서 살아 남기란 정말 정말 힘들거다. 그 생각을 하니 도저히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우리 보리. 유주를 보내고 찾아온 보리를 누구 보다 건강히 품고 있고 싶은 앨리스.
돈은 모자르면 모자란 대로 살게 되겠지. 조금 부족해져도 그 안에서 우린 행복을 찾을 수 있겠지.
일을 그만 두는 대신에 또 다른 목표가 생기겠지.
또래에 비해 조금 늦게 취직을 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2008년 부터 이직 하지 않고 첫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었다.
남정네들만 우글우글 한데서 아가씨가 따라주는 술도 많이 마셔보고 오만 데 다 쫓아다니면서, 공부도 많이 하면서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 생각했던 그런 직장생활은 아니었지만. 모자장수를 만나게 해준 곳이며, 내가 돈벌어 쓰고 싶은데 쓰고, 딸 노릇, 언니 노릇도 번듯하게 하고, 열심히 모아서 결혼이라는 것도 하고, 이제 보리가 생겼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직은 엄마가 되기는 쉬운 여정이 아니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 당사자가 돼 보니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사회인이라는 명함에서 엄마라는 타이틀로 바꿔 타게 되지만 난 여전히 앨리스이고 앞으로도 그럴거다.
일을 관두기 전까지 열심히, 열심히 다녀야지. 그래야 조금이라도 후회가 덜어지겠지.
갑자기 백만가지 감정이 겹쳐지는 오후 시간이다.
고생했어 앨리스.
앞으로도 고생할거야 앨리스.
사랑한다 보리야. 사랑한다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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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5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행하여 퇴직은 일단 보류.
우리 보리를 어떻게 해야 일 하면서 돌볼 수 있을까.
그 고민의 해답만 있다면 빌어먹을 상사와의 더러운 꼴은 참아낼 수 있을텐데..
사는게 힘겹다. 보리의 무게가 한 10톤은 되는 거 처럼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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