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초반에 또 같은 아픔을 겪지 않으려고 유산의 위기에서 아주 어렵게 보리를 지켜냈다.
2달간의 침대 생활, 더하기 한달간의 집 안에서만의 생활. 총 3달 가까이를 모자장수의 헌신과 양보,
다행히 병가를 허락해준 사무실 동료들의 배려로 보리를 고이 품고 있을 수 있었다.
예정보다 일주일 앞선 복귀 였지만 출퇴근 때 모자장수의 에스코트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과,
집안에만 있는 거 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는 기대로 기분 좋게 사무실로 향했다.
그치만 오자마자 나에게 알려진 소식은 보직 변경.
그닥 특별하지 않은 능력을 가진 나지만 말도 없이. 상의도 없이. 무슨 일을 해야하는 지도 모르는 곳에.
게다가 내가 정말 정말 싫어하는 상사 밑에서 일을 해야한다는 건. 쉬는 동안 청정지역으로 만들어놓은 내 머릿 속을 한 순간에 헤집기 딱 좋은 명분이었음.
다른 때 같았음 별로 개의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자식이 있음에도 여직원을 막 대하는 그런 상사 밑에 병가 때문에
내 맘대로 휴가 하루 쓸 수 없는 이러한 처지에 몸도 성치 않은 채로 팀을 옮겨 간다는 건 생각보다 막막 했다.
걱정한대로 오늘. 그런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매년 있는 회사 전사 워크샵 일정이 보리 20주 정밀 초음파 일정과 겹쳤다. 보리 정기 검진이 아니더라고 난 회사 오는 거 말곤 멀리 나다니지 못하는 상태라 워크샵은 누가봐도 무리한 일정.
워크샵 불참자는 사유서를 내라는 말에 있는 그대로 내 상황을 적은 사유서를 가지고 갔다. 아니나다를까.
그 상사란 사람은 "병원갔다 워크샵 가면 되잖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말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텐데.
내가 왜 석달 가까이 사무실을 못나왔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텐데.
그래. 이해 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이고 남자고, 아직 딸자식을 시집 보내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담배 피는 사람인데 뭘 더 기대하겠는가.
물론 말하지 않아도 내 상황을 다 배려 해 달라는 건 욕심이다. 이 정도도 겪지 않고 남의 돈 받아 먹기 쉬운가.
차분히 내 상황을 이야기 했다. 다 아시지 않냐고. 집밖에도 잘 못나가는데 워크샵을 어떻게 가냐고.
가서 일정 하나도 같이 못할텐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랬더니 "그럼 넌 휴가도 없는데 뭐야. 안오면 휴가 쓰는거잖아"
난 또 다시 보리가 있는 배 위에 손을 얹고 울컥한다. 병원갔다 사무실 나오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담배 냄새가 나는 빌딩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꾹꾹 참았던 울컥이 또 다시 밀려왔다.
엄마 되는게 그렇게 사람들에게 미안해해야 할 일인가.
본인들은 어디 하늘에서 황새가 물어다 줬나. 엄마 뱃 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그저 보리가 건강하게 40주 채워 건강히 태어나길 바라는게 큰 욕심인걸까.
그걸 도와 달라는게 큰 부탁일까.
보리야 엄마는 서럽다.
우리 보리는 그런 세상에 살지 않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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